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베르트 모리조
서양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큰 흔적을 남긴 흐름은 인상주의라고 볼 수 있지요.
그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당당히 가진 화가가 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
당시의 여성이 미술에 관여라도 하려면 기껏해야 모델이라는 낮은 신분의 모습이거나,
화가에게 돈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의뢰하는 정도 였지요.
당당하게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 베르트 모리조는
조용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붓을 든 여인이었습니다.
미술을 구성하는 주요소로서 데생과 색채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과일이나 나무, 사람 등의 형태를 잡아주는 데생을 하고,
빨강, 파랑, 보라 등의 색채를 덧입히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데생에 강하고, 여성들이 색채에 민감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들이 중시하는 것이 바로 그림의 색채 이지요.
따라서 여성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색채 인식이 인상파 화가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증조부가 로코코 미술의 대가였던 프라고나르였기에 어려서부터 그림은 그녀의 삶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모리조는 코로라는 유명한 풍경화가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여느 귀족 가문의 규수가 취미로 조금씩 손대던 데생 수준이 아니라 꽤 심도있는 작업들을 했습니다.
그 뒤 그녀는 인상파의 선구자 마네를 만납니다.
그리고 1874년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도 하게 되구요.
외젠이나 모리조의 아버지는 둘 다 고위 관리를 지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가문의 안정된 환경 속에서, 마네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녀는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요.
어느 날, 모리조의 그림을 본 드가가 인상파전 참여를 권했고,
그녀는 그 때부터 인상파 전시회에 꾸준히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마네의 제자로 분류되기도 하고 인상파 화가들의 조합에 이름이 올라 있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직업란에 늘 ‘무직’이라고 적었습니다.
여성들을 속박하는 사회의 굴레에 반발하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나선 것이죠.
그 굴레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타당하게 여겨지는 테두리 안에서 여성의 본분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 것이죠. 그녀는 남성적인 데생을 중시하는 그림을 쫓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개인교사들이 여제자에게 강요하는 정물화나 초상화 등의 그림들을 기본으로 하여
자신의 주변 생활을 화폭에 담는 작업들을 한 것이죠.
모리조의 가족들이 그녀의 그림 속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예술을 두고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데생과 유화들은 처녀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그녀가 보낸 인생을
매번 가까운 거리에서 증언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그대로 한 여인이 쓴 일기 자체이다.”
그녀의 그림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품고 살아간 여인의 손끝에서 그려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림들은 그녀와 같은 삶을 소망하는 많은 여인들과 남성들에게 같은 마음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