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 (1431-1506),
[죽은 그리스도]The Lamentation over the Dead Christ
c. 1490, Tempera on canvas, 68 x 81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15세기 르네상스의 기운이 무르익어 갈 무렵, 이탈리아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각 지역의 통치자들은 혈통 대신 군사력이나 부를 이용해 제위에 올랐으므로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굳히는 일이 늘 화급했다. 이것을 위해 결혼 동맹을 맺거나 외교적 제휴를 마다하지 않았으나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은 명성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신과 가문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대 실력자의 수준은 그가 얼마나 유능한 미술가들을 고용하느냐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다. 다 빈치와 벨리니(Bellini) 그리고 알베르티 (Alberti)같은 거장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토양에서였다.
파도바 출신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d 1431-l506년) 또한 북이탈리아 만토바 공국 후작인 곤차가(Gonzaga)의 궁정화가로 두칼레 궁의 천장 프레스코화 같은 많은 걸작을 남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의 인물이나 사물에까지 원근을 적용하는 단축법을 혁신적으로 고안해 낸 것이었다. 그 이전 우첼로(Uccello)나 엘 그레코(El Greco)의 그림에서도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대담한 단축법의 시행까지는 역시 만테냐를 기다려야 했다.
사실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1480년)는 콜럼버스가 대서양 항해(1432년)를 시작하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 빈치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꿈꿀 정도로 탐험과 혁명의 기운이 높았던 시절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의 이 그림은 크고 두툼한 두 발에서 시점이 출발해 단연 단축시킨 몸통을 거쳐 발의 크기와 거의 비슷한 머리가 화면 뒤를 지탱하며 끝나고 있다. 그리고 머리끝을 소실점으로 한 피라미드 구도로써 원근의 효과를 내려는 화가의 의도가 분명히 포착된다.
조각가답게 손으로 만져 낸 듯 그린 몸에는 살 밑에 있는 단단한 골격이 드러나 있고 몸을 덮은 세마포의 물결치는 듯한 주름은 로마풍의 조각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발과 손등에는 못 자국의 상흔이 뚜렷하다. 어쩌면 만테냐가 진정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이 상처들과 심연의 슬픔을 안은 그리스도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그림의, 마치 일꾼과도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오히려 격조 높은 인간의 진실과 겸허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인가? 로마 후기의 목자상도, 비잔틴 교회제단 위에 그려진 제왕의 위엄을 갖춘 예수상도, 그렇다고 그뤼네발트(Grunewald)의 "이젠하임 제단화"에서 보이는 것 같은 뒤틀린 고통의 형상도 아닌데 이 절망과 같은 죽음의 그림은 도리어 숭고함과 장엄한 죽음의 승리까지 느끼게 한다. 그것은 차라리 인간의 나약함에서 강한 믿음을 발견하려는 만테냐의 신앙 고백처럼 느껴진다. 만테냐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진실한 속성에서 신의 숨결을 들으려 한 것 같다 죽음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이라는 역설을 이 그림이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한알의 밀이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마태복음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