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양식/성화

니콜라스 푸생

살며 배우며 사랑하며 2007. 11. 7. 12:27

 

NICOLAS POUSSIN, Winter, 1660-64

위 그림은 푸생의 작품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담은

연작 <4계> 중 <겨울>이다. 

이 장면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를 주제로 하고 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 되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창세기7:17~18)

왼쪽 화면 절벽 위의 나무 밑으로 으스름한 달이 보이고,

바로 그 아래로 정처 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방주의 모습이 보인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세기7:19~22)

화면 왼쪽 절벽을 보라.

차오르는 물을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땅에 기는 모든 것" 중의 한(=뱀)가 보인다.

겨울에 왜 홍수가 나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유럽에선 가끔 겨울에도 홍수가 난다.

자, 오른쪽 화면 절벽 위로 두 그루의 커다란 나무를 보라.

거기서 좀더 오른쪽으로 가면 조그만 나무가 또 한 그루 보인다.

올리브 나무다.

비가 멎고 노아가 날려 보낸 첫 번째 새는

물이 채 빠지지 않았는지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돌아왔고,

두 번째 새는 하루 종일을 헤매다 결국 이 나무의 잎사귀를 물어 왔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올리브) 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창세기8:11)

물론 이 사건이 있었던 근동지방에는 사계절의 구분이 없다.

그런데도 이 대홍수의 장면을 우리가 <겨울>의 정경으로 읽어야 한다.

왜? 바로 이 올리브 나무 때문이다.

즉 꽃(봄), 보리(여름), 포도(가을), 올리브(겨울).

이것들은 과거의 예술가들이 사계절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던 관습적 기호이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어느 조그만 방,

사방으로 뚫린 통로 때문에 피자 조각처럼 네 조각난 원호형 방의 네 벽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장면이 서로 마주보며 걸려 있다.

그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다.

117*160cm 그러니까 웅장한 규모의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푸생의 고요한 고전주의적 터치는 달빛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모노크롬의 색채와 합쳐지면서 대재앙의 아우성을 고요히 잠재운다.

심지어 왼쪽 화면 위쪽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벼락의 소리마저도

우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온갖 잔혹하고 요락한 이미지에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의 감정일 뿐,

당시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푸생의 마지막 예술적 유언이었던 이 작품.

처음 이것이 공개되었을 때, 이를 보러 온 당신의 관객과 비평가들은

이 작품 앞에서 마치 얼음처럼 그 자리게 얼어붙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과거에 자연은 신의 피조물.

아무리 난폭해도 그것은 창조주인 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

그리하여 신의 자녀들은 창조주를 통해 자연의 폭력을 조정할 수 있었다.

기도의 힘으로. 물론 그 시대라고 하늘에 올리는 기도로

자연을 통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연을 신의 종교적, 주술적 통제 아래 놓고,

창조주와의 신앙적 일치 속에서

자연의 폭력을 적어도 심리적으로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석 같은 신앙이 약화되는 시기엔?

자연의 폭력 앞에 벌거벗은 인간은 무기력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저 자연의 폭력 앞에 압도당하여 얼음기둥처럼

그 자리게 얼어붙었던 게 아닐까?

 



 


'* 마음의 양식 > 성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고다  (0) 2008.02.10
수태고지  (0) 2007.12.22
베로네제-그리스도와 혈루병에 걸린여인  (0) 2007.08.03
야곱의 축복  (0) 2007.06.07
그리스도  (0) 2007.05.28